[재미난 手作]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 정학진, 민화 작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물화는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물음에 대한 답변이다. 미대 졸업생들이 그렇듯, 현실은 나에게 작품만 할 수 있는 여건을 허락하지 않았다. 예술적 갈증을 잠재우거나 다른 형태로 풀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 틈틈이 특이한 물건을 모우는 것도 이런 욕망을 채우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다. 결국 이것들이 이번 정물화에 등장했으니 헛된 일은 아니었다. 나의 정물화는 이런 물건의 수집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느 날,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용기가 생겼다. 여성으로서 사회를, 내 세대에서 다른 세대를 바라보게 되면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나를 직접 그리는 자화상보다 다른 방법을 찾고 싶었다. 점차 애장하고 있던 기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예스러운 소반과 나전 함, 도자기에 대한 애착의 부산물인 로열 코펜하겐 류의 제품들, 여행에서 사 온 기념품들, 10년 가까이 가족으로 키운 강아지 장군이가 갖고 놀던 오리 인형, 커피와 함께 상쾌한 아침을 깨우는 토스터의 타이머 소리, 어머니가 선물로 주신 나무함, 나만이 기억하는 추억의 기물을 꺼내 책거리의 구조로 쌓아 올렸다. 

물론 책거리의 단순한 모사가 아닌 새로운 정물화를 탐색했다. 가까이 있는 물건에 주목했고, 그런 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런 물건에서 찾은 정물화는 내 삶에 대한 표현이다. 내 공간과 내 기물이 나를 거울처럼 비추고 있었다. 이것들은 나의 행복한 추억을 순간적으로 소환했다. 그 그림들은 바로 자화상이었다. 욕망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그것이 나의 얼굴을 그리는 것보다 강렬하게 나를 표현했다.  

화면 속에는 서양의 물건과 한국의 물건이 어우러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으로 보이는 까닭은 족자나 병풍을 연상케 하는 세로로 긴 화면 때문이다. 이는 전통적으로 익숙한 방향을 따라 우리의 시선을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나의 외관과 유사한 모습의 수직적 구도를 통해 자신이 욕망하고 사랑했던 과거의 기억과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현재를 균형감 있게 적절히 배치한다. 소재로 보면 서양적 시각이지만 표현은 전통적이다. 투명하면서도 두세 가지 색면이 중첩적으로 보이는 레이어 기법은 고려 불화에서 수월관음상의 사라와 내의를 표현한 기법도 연상시킨다. 그 효과는 비단에 석채를 사용해서 얻을 수 있는 우아하면서도 고급스러운 색감을 표현하는 진채의 덕목이다. 이는 석채로만 표현할 수 있는 전통적인 기법이며 서양화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다.

나는 내 자화상을 그린다. 화폭의 하단에서 올려다보는 각도와 상단에서 내려다보는 각도를 이중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소소한 시선과 우아한 시선을 동시에 담아낸다. 소소와 우아, 이 이중적 시선은 동시대 욕망의 상징이다. 우리는 소담하고 우아한 미를 사랑한다. 값싸고 값비싼 기물에 담긴 이중적 소비와 욕망, 나아가 이중적 꿈에 대한 것까지도. 치유를 위해 소장한 기물을 나만의 기물거리로 소환함으로써 추억을 저장하고 오늘을 사는 희망의 가치를 염원한다. 나의 정물화는 나의 다큐멘터리를 압축적,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현재의 삶을 전통 속에서 펼쳐 보이려 했고, 독특하고 새로운 정물화로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가고 싶었다. 정물화의 소재가 된 기물은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다. 

사실 나를 강렬하게 나타내는 욕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조심스럽기도 했다. 자칫 잘못하면 천박스럽고 탐욕스럽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많은 사람이 솔직하게 드러내고 욕망해야 스스로를 느낄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번 작업을 통해 나를 돌아보면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여행이 우리를 현실적으로 추억하게 만들고 내일을 꿈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이 여정이 앞으로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내 삶을 긍정하며 할 수 있는 데까지 성장하고 싶다. 그것이 나의 욕구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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