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새로 태어날 시간, 그리고 음악 / 윤한, 피아니스트·싱어송라이터

“엄마, 저 음악하고 싶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부모님께 앞으로 음악을 하면서 살면 즐거울 것 같다고, 상담을 가장한 통보를 했다. 어머니께서는 적잖이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말씀하셨다. 1주일만 더 생각해보라고, 그래도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그렇게 하라고 말이다. 

사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춘기 소년의 호기로운 일탈 정도로 여기고 격렬히 반대하실 수도 있었는데, 부모님께서는 내 결정을 존중해 주셨고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셨다. 데뷔 10년 동안 나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이자, 많은 미디어에서 빠지지 않고 물어보시는 내용이기도 하다. 이렇게 늦게 음악을 시작했는데도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올해는 데뷔 10년차이자 음악을 시작한 지 20년이 되는 해였다. 문득 버클리에 입학했던 때가 떠올랐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실력파 학생들 사이에서 꼴등으로 입학한 나는 1년 중 절반은 손톱 밑에 피가 맺혔을 만큼 그들을 따라잡기 위해 열심이었다. 음악을 늦게 시작했다는 사실을 동력으로 삼아 스스로를 더욱 몰아붙이며 연습하고 곡을 썼던 학창 시절, 수많은 오디션에 참가했다가 떨어지고, 내가 작곡한 곡을 들어봐 달라고 수백 개의 이메일을 보냈던 그때. 세상에 내 음악이 알려지기만 해도 온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행복할 것 같았던 때였다. 

그렇게 나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최선을 다하며 지내던 어느 날, 지금의 기획사를 만나 드디어 데뷔하게 되었다. 사실 많은 음악가에게 10년은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있어서 지난 세월이 짧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음악가의 길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2학년 이후 스스로를 채찍질하던 습관에 관성이 붙어, 데뷔 이후에도 정말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음악을 했다. 지금까지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열정 때문이라고 은근히 자신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데뷔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발표한 190여 곡을 모두 듣다 보니, 지난 10년 동안 나를 이끌어준 것은 오히려 음악이었다. 때때로 ‘나는 재능이 없나?’, ‘내 곡은 왜 안 뜨지?’, ‘이 길이 맞나?’ 하는 답 없는 수렁에 빠져 다른 길을 찾아 헤매던 순간에도 나를 위로해준 것은 음악이었다. 

순간 무언가 번쩍 뜨여진 기분이었다. 다시금 음악을 할 수 있음에 너무나도 감사했고, 음악을 할 수 있음에 설렜다. 꼭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어머니께 음대 진학을 허락받았던 그때처럼 말이다. 이번에는 마치 음악이 나를 허락해준 것 같았다. “계속 음악을 해도 된다”라고 말이다. 

10주년 앨범 <르네상스>(2021)는 ‘예술의 재탄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음악을 대하는 마음도,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선도 모든 것이 이제 시작인 기분이었다. 지난 시간을 반석으로 삼아 새로 태어날 10년, 20년이 기대된다. 욕심을 내어 보자면 앞으로 세상에 위로와 희망과 감동을 주는 곡들을 남기며 남은 평생을 살아가고 싶다. 다행히 음악가는 정년퇴직이 없으니 말이다.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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