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늘 한결같은 / 김범준, 통계물리학자·성균관대 교수

모두 넷이 사는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다. 물론 서로 먹는 것이 달라서 한솥밥을 먹는 사이는 아니지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가족같이 각별한 사이다. 이제 햇수로 아홉 해니, 내 삶의 육분의 일을 함께한 셈이다. 강아지의 이름은 콩이. 콩이는 흰색 말티즈다. 처음 만난 날, 하얀 털에 동그란 까만 눈을 보고는 백설기에 점점이 박힌 검은콩이 떠올랐던 모양이다. 우리 가족이 콩이라고 이름을 지은 이유이다. 아직도 첫날 동영상이 남아있다. 손바닥에 올라갈 정도로 작은 하얀 털 뭉치가 짧은 꼬리를 흔들며 여기저기를 종종 뛰어다니는 모습이 담겨있다. 다시 봐도 입가에 미소가 떠오르는 귀여운 모습이다. 

나와는 달리 아내는 강아지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산책하다 작은 강아지가 다가오기라도 하면 내 등 뒤에 숨고는 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너무나도 예뻐한 나머지 침대에서 콩이를 안고 잠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강아지가 모두 예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딱, 콩이에게만 정을 주는 것이라고. 세상 많은 강아지 중 딱히 특별할 것 없는 콩이가 우리 가족에게 있어서는 특별한 만남이며 존재인 이유는 바로 ‘함께한 시간’ 때문이다. 

안방 침대에서 아침에 눈을 뜬 콩이는 두 딸 중 한 명을 찾아간다. 그리고 작은 발로 방문을 긁으며 열어달라고 낑낑댄다. 내가 열어주어도 키 작은 콩이는 혼자서 침대에 오르지 못한다.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는 내 손에 닿아 내가 들어줄 수 있을 때까지 엉덩이를 뒤로 뺀다. 빨리 침대에 올려달라는 몸짓이다. 이렇게 아침 문안을 마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소시지를 달라고 한다. 어떻게 아냐고? 꺼내줄 때까지 제자리에서 정신없이 빙글빙글 돌기 때문이다. 

이처럼 간식거리를 줄 때가 새로운 것을 가르칠 절호의 기회이다. ‘엎드려’, ‘손’, ‘빙글빙글’, ‘하이파이브’는 이미 오래전에 모두 익혔다. 얼마 전 시작한, 엄지와 검지를 붙여 동그랗게 말고 ‘코’라고 하면 코를 그 안에 넣는 것도 이제 제법 잘한다. 셋째 딸이라고 불리는 콩이는 알아듣는 단어가 제법 있다. 

“큰언니 어디에 있어?”

이렇게 물으면 큰딸 방을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추석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신은 콩이 좋아, 깨가 좋아?” 

아내가 송편 이야기를 내게 묻자, 자기 이야기인 줄 알고 반응하기도 했다. 무척 똑똑하다. 하긴, 요즘에는 자식도 아닌 반려견을 자랑하는 팔불출이 많더라. 

콩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단연 나와 하는 공놀이다. 공을 거실에서 저 건너로 발로 차면 후다닥 달려가서 다시 물어오는 놀이를 참 좋아한다. 공을 물고 뛰어오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두운 곳으로 굴러가거나 햇빛이 역광으로 비치면 공을 잘 찾지 못한다. 강아지 시력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도 콩이를 키워보고 알게 되었다. 그래도 귀는 참 밝다.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 전에 어떻게 아는지 벌떡 일어나 마중을 나간다. 기특하게도 짧은 시간 잠깐 외출했다 집에돌아와도 정말 반가워한다. 

반려견이 주인 얼굴을 보았을 때 뇌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기공명영상으로 관찰한 연구가 있다. 강아지는 주인을 보고 단지 기뻐하는 척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결과를 얻었다. 하긴, 강아지를 키우는 사람이면 꼭 논문을 안 봐도 누구나 아는 이야기다. 따라서 나를 보고 반가워하는 모습이 진심이 아니라 단지 반가운 척하는 것뿐일 리는 절대로 없다. 뇌 영상을 보지 않아도 나는 안다.

생각해보면 특별히 해주는 것도 많지 않은데, 매번 정말 기쁘게 나를 맞아준다. 그래서일까. 매일 일상에서 콩이와 소중한 만남을 이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찾아올 이별이 두렵다. 내가 주는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더 큰 이 소중한 존재가 사라질 날이 벌써 걱정이다. 

어느 날, 종교가 없는 내가 아내에게 건넨 농담이다. 

“죽어서 가는 천국이 있다면 그곳에는 사람보다 강아지가 더 많을 것 같아.”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많으리라. 

올해로 내 나이 쉰다섯이다. 인생의 앞길은 어떻게, 또 얼마나 남아 있을까. 물론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참 많은 이들을 만났다. 새삼 뒤돌아보면, 처음 몇 번의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남긴 이라고 할지라도 이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적도 많이 있었다. 반면, 생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지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이 손꼽아 기다려지는 이도 제법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늘 변함없이 한결같은 이가 참 좋다. 첫 만남 이후 늘 한결같은 콩이처럼.  

*1967년 출생.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학사, 석사, 박사. 스웨덴 우메오대학교, 아주대학교 교수 역임. 한국물리학회 용봉상(2006), 한국출판문화상 저술교양부문(2015) 수상. 現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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