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는 왜 총잡이가 됐을까? <조선총잡이>로 본 쇄국정책


이준기는 왜 총잡이가 됐을까?


드라마 <조선총잡이>로 본 쇄국정책

 
얼마 전 종영한 KBS 드라마 <조선총잡이>는 19세기 조선의 개화를 주장하는 아버지가
암살당하면서 그의 아들 박윤강(이준기 분)이 복수극을 벌이는 내용으로, 탄탄한 스토리와 실력파 배우가 만나 큰 인기를 모았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 있다. 왜 우리 선조는 나라 문을 걸어 잠그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쇄국정책의 원조는 일본
<조선총잡이>는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흥선대원군의 섭정을 벗어나 개혁 통치에 나선 고종(이민우 분)은 개화를 주장하며 자신의 뜻을 따를 신진 학자들을 불러들이지만, 이를 반대하는 수구파는 학자들을 암살했다. 주인공 박윤강의 아버지 박진환(최재성 분)이 수구파 최원신(유오성 분)에 의해 암살당한 건 이 때문이다.
흥선대원군은 왜 쇄국정책을 펼쳤을까? 현대의 관점으로 보면 쇄국정책은 ‘조선을 개혁할 기회를 놓친 실패한 정책’이다. 하루라도 빨리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국력을 키웠다면, 일본에게 국권을 침탈당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쇄국정책을 펼친 이유에 대해 알아보기 전, 쇄국(鎖國)이란 말부터 짚어 보자. 쇄국은 쇠사슬로 걸어 잠그듯 조선이 다른 나라와 교류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말은 조선이 아니라 일본이 먼저 썼다. 원래 일본은 서양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나라다. 전국시대 서양과 무역을 하고(서양에서 조총을 수입해 그걸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동남아시아로 진출할 정도였다. 그 이유는 일본 각지의 영주들이 나라의 존망을 걸고 부국강병에 힘썼으며, 나라가 부강해져야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각지의 영주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해외문물을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그러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도쿠가와 막부가 세워지면서 외국과의 교류가 뚝 끊겼다. 해외무역을 통해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은 영주들이 막부에 대항할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서구열강의 식민지 쟁탈전
조선의 쇄국은 어땠을까?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개방적이었다.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의 청해진과 고려시대의 벽란도가 그 증거이다. 그런데 조선 말, 왜 쇄국의 길을 걷게 됐을까? 여러 가지 이유 중 ‘서양열강의제국주의 노선’부터 살펴보자.
19세기, 유럽 각국은 산업혁명을 끝내고 근대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했다. 서구 열강들은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되어, 자국 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식민지를 찾았다. 원료의 수입과 상품의 판매처로서 식민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18~19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지 쟁탈전은 이런 연유에서 시작된 것이다. 식민지 쟁탈전의 꽃(?)은 영국이 청나라를 상대로 일으킨 ‘아편전쟁’이었다. 당시 영국과 청나라는 무역을 했는데, 영국 상품은 청나라
에 인기가 없었지만, 청나라 상품은 영국에서 인기 상한가를 쳤고, 막대한 양의 은이 청으로 흘러들어 가면서 영국은 적자를 떠안았다. 영국은 무역수지 적자폭을 줄여보기 위
해 인도에서 아편을 가져와 중국에 팔기로 했다(그 이전에 말레이시아 광산에서 아편장사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그 결과 아편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너무 쉽게 무너졌다. 이전까지 영국을 포함한 서구제국의 세력은 중국을 ‘잠자는 사자’라며 두려워했는데, 아편전쟁 이후 ‘병든 돼지’라 부르며 우습게 보기 시작했다. 문제는 아편전쟁이 중국 하나만의 문제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후 서구제국주의 세력의 야욕은 아시아 각국으로 뻗어나갔다. 같은 시기 조선은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개방적이었다. 중국을 통해 서방세계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었고,
쇄국을 펼쳤던 일본에 비해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아편전쟁과 뒤이은 서양세력의 침입과 천주교 세력의 준동으로 척화비를 세우며 서양세력과의 접촉을 엄금하게 된다.
 
조선왕조 체제의 붕괴 위기감
당시 국제정세로 보아 서양세력과 의 교류를 통해 선진문물을 받아들여 나라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필요성은 누구라도 반론할 수 없다. 청나라마저 서양 제국주의의 신식무기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신식소총과 포함 앞에 임진왜란 때 쓰던 조총을 개량한 화승총을 들고 맞서 싸운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분명 문호개방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문호개방이 가져올 파장에 대해서도 생각해 봐야 했다. 당장 서양 열강들이밀고 들어와 중국에게 했던 것과 같은 굴욕적인 조약을 강요할 수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조선왕조 자체가 무너질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조선이 쇄국정책을 펼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서양 제국주의가 조선왕조를 무너뜨리지 않는다 해도,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천주교로 인해 조선왕조 5백년을 이
어져 내려온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국가 운영 체제가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호 개방 이전에도 천주교 신자들은 사당 안에 모셔 놓은 자기 조상의 신주(神主 : 죽은 사람
의 위패)를 불태우고 제사를 거부하는 등 조선사회에서는용납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렀다. 게다가 신 앞에 만민이평등하다는 주장은 엄격한 사농공상의 신분제를 유지하
고 있던 조선에게는 나라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흥선대원군과 사회지도층은 쇄국을 결의하게 된다. 물론 그들 나름대로 ‘변명 아닌 변명’도 있었다. 쇄국을 하는 동안 외세에 맞설 힘을 기르겠다는 것이다. 흥
선대원군은 외세에 대항할 만한 ‘신무기’ 개발에 열을 올렸다. 대동강에서 격침한 제너럴셔먼호를 끌고와 개조했고, 면 13장을 겹쳐서 방탄복을 만들었으며, 원시적인 수뢰 등을 만들어 이양선의 출몰에 대비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력은 키울 수 없었다.
구한말조선의 정세는 혼돈 그 자체였다. 흥선대원군의 장기집권에 불만을 품은 세력이 등장했고(명성황후 일가인 여흥 민씨 세력), 고종 역시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벗어나고 어 했다. 드라마에서는 고종이 개화파 지식인들을 등용해 안동 김씨를 중심으로 형성된 수구대신들을 견제하는 모습이 그려졌으나, 실제 역사에서는 여흥 민씨 세력에 힘을 실어주며 흥선대원군을 견제해 정치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당장 국가의 장래를 걱정해야 할 마당에 서로의 주도권 싸움으로 국력은 소진됐고, 그나마 시행된 개혁도 기득권의 반발과 국력의 쇠잔으로 제대로 진척되지 못했다.
 
합리(?)적인 대안으로의 쇄국정책
쇄국정책이 아예 효과가 없던 건 아니다. ‘대외적인 효과’는 있었는데, 우선 서양세력들은 완강하게 저항하는 조선을 보며 통상 요구를 철회했다. 중국과 같이 시장이 큰  것도 아닌 상황이었기에 서구세력은 조선 개방을 포기했다.
문제는 일본이었다. 일본은 쇄국정책을 고수하는 조선을보며 극단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로 정한론(征韓論)이다.조선을 정벌해 식민지로 삼아 버리자는 것이다. 일본은 미
국에 의해 강제로 문호를 개방했고, 뒤이은 메이지 유신으로 빠르게 제국주의 체제를 갖춰 나갔다. 그러다 보니 자신들이 배운 서구 제국주의 방식대로 원료를 수입하고 상품
을 수출할 식민지가 필요했다. 이미 대부분 식민지는 서구 세력이 점령했기에 일본은 조선으로 눈을 돌렸다. 조선의 문호를 개방시키면 대륙으로 진출할 발판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결국 메이지 유신의 주축세력은 일본이 살기 위해 조선을 먹어야 한다
는 정한론을 내세웠고, 이는 고종
12년 1875년 운요호 사건으로 폭발 됐다. 운요호 사건은 일본 군함 운요호가 불법으로 강화도에 들어와 측량을 구실로 조선군 수비대에게 시비를 걸어 전투를 벌인 사건이다. 이를 계기로 ‘강화도 조약’이 강제 체결됐고 조선의 쇄국정책은 끝난다.
<조선총잡이>는 바로 이 혼란의 시기를 그렸다. 지금은 쇄국정책을 비판하지만, 당시 상황이라면 여러 대안 중 가장 합리적인(지도층의 입장에서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이는
일제강점기 친일파가 권세를 유지한 그 후의 역사를 보면 확인 할 수 있다. 혼란의 시기 가장중요한 건 냉철한 판단과 추진력이지만, 구한말의 조선에는 판단력도, 애국심도 없었다. 남아 있는 건 5백년 왕조라는 허울 좋은 껍데기와 학정에 지친 백성, 자신의 배를 채울 궁리만 하는 지도층뿐이었다. 어쩌면 쇄국은 조선이란나라가 쥐어짜낼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었을지 모른다.



[출처] 미즈코치 ms. c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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