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갖고 놀다.’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편집 디자인에서 활자의 서체나 글자 배치를 구성하고 표현하는 일을 말한다. 그러나 디자인업계 또는 생활 속에서 디자인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은 이보다 더 적극적인 의미로 ‘글자를 갖고 노는 모든 것’을 타이포그래피라 칭한다. 책과 신문 등 모든 인쇄물에는 타이포그래피가 담겨 있다. 생수병에서부터 온갖 제품 포장지와 영화 포스터, 음반표지 등 타이포그래피가 쓰이지 않은 것이 없다.
최근 타이포그래피는 정보를 담은 텍스트 차원에서 벗어나 디자인 개념이 강조된 하나의 이미지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기업들은 브랜드 차별화 전략으로 고유의 서체를 개발하고, 개인들은 크고 작은 인쇄물이나 블로그 등에서도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를 즐긴다.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문 블로그들이 인기를 끌고 있고 국내 처음의 전문지도 창간됐다. 타이포그래피를 아우르는 디자인 토크쇼도 생겨났다.
김기조씨의 디자인 토크쇼 장면
대중적으로 알려진 타이포그래퍼는 김기조씨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을 제작한 인디밴드 음반사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디자이너인 그는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한 강연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실제 작업한 음반 디자인을 예로 들며 타이포그래피를 소개하는 그는 지난해 첫 개인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음반에서 볼 수 있는 타이포그래피가 그의 작품이다.
타이포그래퍼를 비롯한 그래픽, 북 디자이너들을 만날 수 있는 디자인 토크쇼 ‘강쇼’도 열리고 있다. ‘강쇼’는
그래픽디자이너 강구룡씨가 진행하는 것으로 버라이어티 디자인 토크쇼를 표방한다. 지난 2월부터 시작해 김기조씨가 첫번째 초대손님으로 등장했다. 오는 11일은 3회째로 그래픽디자이너이면서 홍대 ‘땡스북스’ 대표인 이기섭씨가 초대손님으로 나온다. 매달 둘째주 금요일 오후 7시 서울 마포에 있는 윤디자인연구소 세미나룸에서 열린다.
스튜디오 밈을 운영하고 있는 타이포그래퍼 김의래씨는 ‘타이포그래피 야학’을 열고 있다. 타이포그래피에 대해 마땅히 배울 수 있는 곳이 없는 디자이너 지망생이나 타이포그래피에 관심있는 직장인과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디자인 응용방법뿐 아니라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로서 타이포그래피의 역할 등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강의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 전국을 돌며 진행하고 있다.
에단 박의 타이포그래피 작품
타이포그래피 전문지 ‘THE T’ 창간호 표지.
이달 초 창간된 ‘THE T’는 국내 처음의 타입·타이포그래피 전문 계간잡지로 윤디자인연구소가 발행한다. 타이포그래피를 주제로 대중과의 소통을 확대하기 위해 만들었다. 창간호는 ‘이 모든 타이포그래피적 순간들’이란 주제를 내걸고 유명 서체 제작 과정과 국내외 특별한 타이포그래피 작품들, 해외의 유명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와의 인터뷰, 디자인 전문 칼럼 등을 실었다.
타이포그래피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타이포그래피를 둘러싼 저작권 싸움이 벌어지면서 공공재로 서체를 개발해 인터넷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디자이너들도 있다. 타이포그래피와 관련한 최신 흐름과 담론을 소개하는 웹진 ‘타이포그래피 서울’도 인기다.
황소영 편집장(타이포그래피 서울)은 “요즘은 명함이나 청첩장 하나를 만들어도 자기만의 스타일을 드러내려는 이들이 많다”면서 “타이포그래피는 모든 디자인의 기본으로 심미적인 것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이면서 예술로서 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하나의 매개로도 쓰인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 이슈 등 사회적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담은 타이포그래피를 만들어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알리는 디자이너들이 늘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 | ‘THE T’ 매거진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