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사전적인 뜻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다. 이 중에서 ‘생계’의 관점에서 보면, 소설가는 결코 권할 수 없는 직업이다. 거기에다 한국에서 마이너 장르 중 하나로 인식되는 추리소설을 쓰겠다면, 한마디로 설상가상이다. 

불멸의 캐릭터 필립 말로의 창조자 레이먼드 챈들러는 작가가 되고 싶다며 조언을 구하는 독자에게 1951년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나는 누구에게도 작가가 되어라, 되지 마라 할 수 없습니다. 일반적인 믿음과 반대로 작가란 몹시 고된 직업이고, 어떤 식으로든 괜찮다 싶은 수입을 올릴 정도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예요. 펄프 잡지가 쇠퇴한 덕에 초보자들이 과거보다 한층 더 어려워지게 되었지만, 과거에도 그저 어려운 일이긴 했어요. (…) 적어도 앞으로 한동안은 글로 먹고살지 않아도 되길 바랍니다. 글로 먹고살 가능성은 아주, 아주 낮습니다.”

추리소설은 다른 어떤 장르의 소설보다 인간 내면의 빛과 어둠을 직시하고 그것들을 씨실과 날실로 하나하나 직조해내는 작업이다.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잔혹함과 범죄성을 탐구해 하나의 창작물로 완성하는 과정은 같은 소설이라 해도 더 많은 노력과 품이 드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처럼 생계도 불안정하고 품이 많이 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려고 그토록 애를 쓰는 것일까? 데뷔한 지 50년이든 됐든 이제 갓 몇 개월이 됐든, 전업이든 부업이든, 한국에서 추리소설가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들에게 직접 물어보았다.

첫 번째는 가장 원초적인 물음이었다. 왜 추리소설을 쓰는가?

이에 대해 가장 독특한 대답을 해준 작가는 이상우였다. “젊은 시절 필화 사건으로 교도소에 수감되었는데, 수감자들을 위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느라 창작한 스토리가 모두 미스터리였다. 후에 그 스토리를 소설로 옮기다 보니 어느새 추리작가가 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다른 작가들은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다는 의견이었다. 김재희는 “나의 생각과 사상, 하고 싶은 말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말했고, 백휴는 “그로테스크한 내용에 논리가 뒷받침되는 것이 좋아서”, 그리고 공민철은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동경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지만, 내가 그들의 작품을 읽고 큰 감동을 받은 것처럼 나 역시도 누군가의 마음을 울리는 작품을 쓰고 싶다. 이런 마음은 좋은 작품을 읽을 때마다 점점 더 커지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홍성호는 왜 쓰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은 없지만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뭔가 하고 싶다고 느끼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해낸 건 추리소설 쓰기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조동신은 좀 더 결연한 대답을 내놓았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추리소설이 인기가 없음을 알지만, 그 때문에 더 오기가 생겨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장르문학 발전에 공헌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쓴다.”

다음은 ‘생계’와 관련된 물음이었다. 추리소설가로 돈은 얼마나 버는가?

스티븐 킹 역시 한때는 굴뚝 청소부보다 주급이 적다며 친구에게 놀림을 받았다고 하는데, 1년 수입이 아예 없거나 100만 원 내외라고 대답한 작가가 가장 많았다. 가장 고액의 수입을 말한 작가는 서미애로 전작 《당신의 별이 사라지던 밤》으로 8,000만 원 정도의 수입을 얻었다고 말했다. 그 외에 대략 1,000만 원에서 3,000

만 원 사이라고 대답한 작가는 김재희와 황세연이었다. 공민철은 “사람이 식물처럼 물과 햇빛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면, 먹고살 만큼 충분히 번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다소 자조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전직 혹은 현직에 대해서도 물어보았다. 추리소설가가 되기 전, 혹은 현재의 직업이 추리소설 창작에 도움이 되는가?

대체로 도움이 된다는 대답이었다. 경비교도대로 군복무를 했던 황세연은 “교도소에서 군대 생활한 경험과 출판사에서 일했던 경험은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다만, 회사에 다니며 틈틈이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글과 관련이 있는 직장은 피하는 게 좋을 듯하다. 출판사에서 일했을 당시 나는 남의 글을 수정하고 검토하는 일에 치여 내 글은 들여다보는 것조차 지겹게 여겨졌다”고 답했다.

현직 의사인 박상민은 “첫 장편 《차가운 숨결》은 직업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내가 만일 일반인이었다면 애초에 대학병원을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을 쓸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매일 몸담고 사는 공간이었기에 자연스럽게 그곳을 무대로 사건을 구상하게 되었다. 취재와 자문의 필요성도 없고, 직업을 바탕으로 리얼한 묘사를 할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소재를 쓰니 부담이 없고 집필 기간도 단축되었다”라며 만족감을 표시했다.

그 외에도 IT 업종에 종사하며 해킹에 대해 글을 쓴 홍정기, 언론인이면서 추리소설을 쓴 이상우, 디자이너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김재희, 전직 사서인 조동신 등이 전직 혹은 현직이 집필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했다. 반면 전업주부인 한새마는 “가사노동, 육아에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빼앗기고 있어서 창작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가장 의외의 대답을 내놓은 이는 홍성호였다. “법원에서 양형조사관으로 형사 사건 피고인이나 피해자를 면담하고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하는 일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형사 사건을 다루니 소재를 얻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공무상 비밀 엄수 의무도 있고, 생각만큼 현실 세계의

사건은 미스터리하지 않다. 다시 말해 소설로 쓸 만한 사건은 없다.”

* 인터뷰 전문은 《계간 미스터리》 2021 봄호에서 확인해주세요.